[#터뷰]결혼식때 신랑·신부가 찾는 72세 할아버지..왜?

머니투데이 이상봉 기자 | 2020.10.31 08:36

호텔리어 은퇴 후 '웨딩카'로 제2의 인생 시작한 노경환씨, "청년들의 결혼식으로 은퇴시니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

편집자주 | #결혼식 #웨딩카 #은퇴시니어 #웨딩쇼퍼 해시태그(#)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개념 영상 인터뷰입니다.


"결혼식 때 신랑·신부가 의외로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웨딩카'에요. 이른 새벽부터 지인에게 부탁하기도 미안하고, 사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늘 걱정이 많습니다."

말끔한 정장에 각 잡힌 쇼퍼 모자를 쓴 노신사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비넥타이에 흰장갑까지…정장 바지는 칼주름이 잡혀있다. 깔아놓은 레드 카펫 위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걸어온다. 노신사는 환히게 웃으며 배꼽인사를 한다.

결혼식 당일 신랑·신부 및 가족들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는 일. 동시에 은퇴한 시니어들에겐 다시 활력을 주는 일.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노경환 대표(72)가 창업한 웨딩카 운전대행 플랫폼 '웨딩쇼퍼'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숍에서 신랑·신부의 메이크업을 기다리는 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호텔리어로 20여 년간 근무했던 노 대표는 지난 2012년에 은퇴했다. '은퇴하고 나면 인생을 즐기면서 살 거야'라는 기대 심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특히 경제적으로 추락하는 부분이 가장 컸다. 집에만 머물다 보니 아내와의 마찰도 잦아졌다.

"사실 은퇴하고 나면 골프 치고 여유롭게 지낼지 알았어요. 막상 은퇴하고 나니까 아니더라고요.(웃음) 경제적인 활동이 없으니까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다시 찾아 나섰죠."

그 후 노 대표는 3년간 낮에는 창업을 위한 공부, 밤으로는 대리운전으로 경제활동을 이어왔다. 때마침 아들의 결혼이 있었는데, 결혼식 당일 아들이 새벽에 차를 가지고 나가는 걸 목격했다. 그는 아들에게 '결혼식 주인공이 어떻게 차를 가지고 나가냐'며 물었고, 아들은 '요즘 결혼 문화는 아버지 때와 달라서 친구들한테 신세 지는 것도 결례'라고 답했다.

노 대표는 아들의 결혼식을 통해 창업의 힌트를 얻었다. 결혼식에 필요한 웨딩카가 은퇴한 시니어들에겐 새로운 일자리와 활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호텔리어였던 경력을 살려 품격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경환 대표(72) /사진=노경환 대표 본인 제공
그는 창업 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며 웨딩쇼퍼 사업 계획을 발전시켰고, 각종 정부 및 지자체 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안전운행과 더불어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소문에 2018년 103건, 2019년 205건으로 신청하는 고객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노 대표는 의전, 레드카펫, 비상약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들의 만족을 높이고 있지만 다른 측면의 고민거리도 있었다. 혹시나 고객들이 은퇴한 중장년층이 운전하는 게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들진 않을까라는 점.


특히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하면서 굳어진 시니어들의 권위의식. 일명 '나 때는 말이야'.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결혼식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이 자칫 과하고 부담스럽진 않을까 우려됐다고. 이는 노 대표가 새로운 쇼퍼들을 교육할 때마다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왕년에 우리들이 가졌던 귄위와 사회적인 혜택들은 이젠 내려놓아야죠. 젊은 세대들과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한 조언이나 참견보다는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뭔가를 파악하고 그 틈새시장을 찾고 있습니다."

팁도 절대 받지 않는다. 만약 고객이 팁을 주면 감사히 받은 후 다시 축의금으로 돌려주는 게 웨딩쇼퍼의 원칙이다. 이런 노 대표의 생각에 공감을 표한 쇼퍼들은 은행 지점장, 출판사 사장, 건설회사 임원 등 왕년에 사회에서 내로라했던 사람들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청년들의 결혼식이 은퇴 시니어에겐 소중한 일자리와 일상의 활력을 줄 수 있다./사진=이상봉 기자
웨딩쇼퍼는 취약계층, 다문화 가정, 탈북이주 커플 등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분들의 결혼에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한 단순 운전 대행보단 계층·세대 간의 화합을 더 중요시한다고 노 대표는 말한다.

그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 경제 추제는 이제 청년들이다"며 "은퇴한 시니어들이 가진 유연한 장점들로 청년 세대를 돕는 구조로 변화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노 대표는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강조했다.

"은퇴하고 나면 '이제 내가 할 일이 뭐가 있겠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보통 나이 핑계를 많이 대시죠. 세상이 변했습니다. '나이는 별거 아니다, 대수롭지 않다'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우리 모두 인생 후반전을 위해 힘찬 도전을 준비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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